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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이냐시오 회심의 은총을 청하는 성삼일 피정 안내

이냐시오의 해 월피정 안내자료13_라 스토르타_이냐시오 회심의 은총을 청하는 성삼일 피정 안내.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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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몇 킬로미터 남겨 두고 하루는 어느 성당에서 기도하는데, 그는 자기 영혼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체험했다. 그리고 성부께서 자기를 당신의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한자리에 있게 해주시는 환시를 선명히 보았으며, 성부께서 자기를 성자와 함께 있게 해주셨음을 추호도 의심할 바 없었다.” (자서전, 96)
성목요일

이냐시오의 십자가

영적독서
“복되신 신부님께서 파브르 신부와 라이네스 신부와 함께 도보로 로마로 가는 길이었다. ... 어느날 로마 근처에 와서 두 신부들을 벌판에 남겨두고 기도를 드리러 어느 적막한 버려진 경당에 갔다. 기도에 한참 열중하고 있을 때 영혼에 변화가 있는 것을 느꼈고, 이 때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의 가장 복되신 아드님과 함께 나타났다.
예수님께서는 어깨에 십자가를 짊어지고 계셨는데 그분의 눈에서 영혼이 느껴졌고 그분은 눈부신 빛 속에 계셨다. 이냐시오는 영원하신 성부께서 아드님을 향하여 이냐시오와 그의 무리들을 분에 넘치는 사랑으로 칭찬하시는 것을 보았고 당신의 손을 이들에게 내미시는 것을 보았다. 온유하기 짝이 없는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당신의 보호 아래에 두셨다. 그분은 당신의 십자가를 계속 짊어진 채 이냐시오를 향하여 사랑 가득하고도 온유하신 표정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로마에서 너에게 호의를 베풀겠다. Ego vobis Romae propitious ero.”
이 거룩한 계시로 인하여 우리의 신부님은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으셨고 그의 무리에게 이를 전하며 더욱 격려하면서 장차의 어려움을 이겨낼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다른 모든 놀라운 조명과 더불어 이 환시로 인하여 예수님이라는 가장 거룩한 이름이 이냐시오의 영혼에 각인되었고 우리 구세주를 당신의 주인으로 섬기고 그분을 따라 십자가를 지고 가겠다는 진실한 열망에 사로 잡혔다.
이것이 이냐시오와 다른 초기 신부님들의 겸손한 요청에 의하여 교황청에서 우리의 신앙을 확인하고는 우리의 명칭을 예수회로 하도록 한 연유이다.”
Pedro Ribadeneira, Vita Ignatii Loyolae (1616)
묵상요점
우리는 여기에서 십자가의 역설을 보게 됩니다. 십자가는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죄와 시련의 상징이면서 또 누군가에게는 용서와 화해의 거룩한 상징이 됩니다.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너무나 감사하고 복된 십자가의 역설이야말로 우리가 성삼일을 통해서 기억해야할 예수님의 구원의 신비일 것입니다.
라 스토르타에서 이냐시오가 체험한 십자가의 신비는 죄 많은 우리들을 기꺼이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 “영혼이 비치는 눈빛”을 느끼는 체험이며,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꺼이 짊어지는 것으로 연결됩니다.게 됩니다. 이냐시오의 회심의 여정이 시작된 것입니다.
1540년 이냐시오가 직접 예수회에 받아들인 리바데네이라 신부님은 최초의 이냐시오 전기를 쓴 사람입니다. 리바데네이라 신부님은 예수회의 이름이 바로 라 스토르타의 체험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삼일을 먼저 이냐시오 성인이 라 스토르타에서 경험했던,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는 상징적인 사건의 영적인 의미를 기도 속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열고자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기도 속에서 다음의 질문을 곱씹으며 답을 찾아봅시다.
1.
내가 경험하는 예수님의 눈빛을 떠올려 봅시다.
이냐시오의 눈이 머무른 예수님의 시선은 “사랑 가득하고도 온유했”으며 예수님의 영혼이 비치는 눈빛이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예수님의 눈빛은 우리가 경험한 예수님 사랑의 체험에 비례할 것입니다. 내가 경험하는 예수님의 눈빛은 어떤 것일까?
2.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건네는 말씀에 귀 기울여 봅시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을 기도 속에서 바라보면서 귀를 기울여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어떤 말씀을 건네고 계시는가?
성금요일

아루페의 십자가

영적독서
“친애하는 신부님 여러분. 이 모임에서 여러분과 만날 때 보다 나은 상태였기를 제가 얼마나 바랐는지 모릅니다. 여러분이 보듯이 저는 심지어 여러분께 직접 연설도 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저의 총장 자문들이 제가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바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저 자신이 하느님의 손에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어린 시절부터 전 생애동안 제가 바라마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제가 여전히 바라는 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주도권이 하느님께 온전히 있다는 차이 말입니다.
자신이 완전히 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느끼는 것은 참으로 심대한 영적 경험입니다. 예수회 총장으로서 18년을 마무리하면서 저는 무엇보다 주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를 향한 그분의 관대하심은 한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그분이 주신 모든 은사가 예수회를 위한 것이었기에 모든 예수회원들과 나누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
-페드로 아루페, 제33차 예수회 총회 메시지 (1982년)
묵상요점
페드로 아루페는 예수회 총장으로 일하던 중 1981년 혈전증으로 인하여 반신불구의 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후 아루페는 1991년 돌아가시기까지 한 전기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시계가 멈춘” 삶을 사시게 됩니다. 몸을 가누기 힘들고 심지어 언어능력의 상당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아루페는 자신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해 소집된 제33차 예수회 총회에서 앞서 소개한 감동적이고도 아름다운 훈화-총장으로서의 마지막 훈화를 남겼습니다.
아루페를 간병했던 예수회 수사 반데라는 후에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그분 방에 일부러 가서 몇 분 동안 곁에 머물곤 했습니다. 그럴 때면 나의 내면이 그토록 평화로워질 수가 없었습니다.”
페드로 아루페가 병상에서 보낸 10년은 500년 전 라 스토르타에서 이냐시오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건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고통의 십자가는 이냐시오와 페드로 아루페에게 위로와 감사의 십자가가 됩니다. “어느 때보다도 하느님의 손에 맡겨진” 순간인 것입니다. 아루페는 이냐시오의 영성을 당시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이냐시오의 언어를 다시 복원했던 분이면서 동시에 심지어 예수님의 십자가조차 짊어졌던 이냐시오의 참된 후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삼일을 보내고 있는 지금, 가장 어두운 영혼의 밤의 시간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이 하느님의 손에 있다”는 사실을 느꼈던 아루페의 십자가의 시간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고통과 슬픔, 우울함 앞에서 그 동안 잊고 있었던 영적 감각을 다시금 일깨우고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손”을 느끼기를 청해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예수님의 어두운 밤을 묵상하는 성삼일, 다음의 질문 앞에 서봅시다.
나의 어둔 밤은 언제였나? 그리고 그 밤 나는 어떤 마음에 사로 잡혀 있었나?
2. 살면서 계속해서 맞이할 어둔 밤을 생각하며 다음 질문을 던져 봅시다.
나는 내가 맞이할 어둔 밤 “하느님의 손에 나를 내어맡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성토요일

우리의 십자가

영적독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죄의 종살이에서 구원해주리라 약속하신 시간이 다가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동산의 자락에 있는 이곳 겟세마네로 오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로 이 거룩한 장소, 예수님의 기도와 고통, 피땀으로 성화된 이 곳, 무엇보다 성부의 사랑에서 비롯한 뜻에 ‘예’라고 답함으로써 성화된 이 곳에 서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겟세마네 성당 강론 (2014년 5월 26일)
묵상요점
겟세마네는 어떤 점에서 예수님 구원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가장 밀도가 높은 고통의 시간 속에 계셨습니다. 이 시간은 예수님의 인성이 가장 아프게 절정으로 치닫는 시간이면서 동시에 예수님의 신성, 우리를 향한 가장 큰 사랑이 활짝 꽃을 피운 시간입니다.
아마도 겟세마네에 들어가기 전과 그 이후의 예수님의 모습은 어찌 보면 또 다른 거룩한 변모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사가 마태오와 마르코는 모두 예수님께서 고통과 번민의 시간을 지낸 후 “이제 때가 되었다. 일어나 가자.”라고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이 말은 고통의 시간, 인성의 시간이 이윽고 하느님의 시간으로 변화하는 순간을 가장 잘 말해줍니다.
우리도 역시 우리의 겟세마네에 서있습니다. 우리의 겟세마네에서 우리 역시 수많은 번민과 고뇌의 시간을 갖습니다. 가정과 직장, 일자리, 사람과의 관계에서 비롯한 고통들을 무겁게 몸으로 겪고 있습니다. 이 순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우리가 서있는 이 겟세마네는 2천 년 전 예수님께서 이미 서계셨던 곳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고통, 피땀”으로 당신의 시간과 장소를 성화시켰다는 사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섭리를 의연하게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십니다.
성삼일의 마지막, 우리는 우리의 겟세마네에서 우리의 고통의 시간을 봉헌하고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이제 때가 되었으니 일어나 갈” 수 있는 정화의 은총, 용기와 격려의 은총을 청해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우리의 겟세마네를 생각해봅시다.
나는 나의 겟세마네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절망하고 원망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도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보도록 청하고 있는가?
2. 나는 하느님께 어떤 은총을 청하고 싶나요?
내가 하느님의 초대를 알아듣고 “예”라고 대답하기 위해서 어떤 은총이 필요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