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하루 피정
이냐시오, 예루살렘에서 순명의 덕을 행하다
영적독서
“우리 모두는 최근 반포된, 피임과 관련된 문제에 관한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생명’을 둘러싼 반응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회칙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한편, 상당수의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은 …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습니다. 회칙에 대한 반대가 일부에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까닭에 저는 예수회원으로서의 우리의 의무를 상기시키는 일을 미루지 않고자 합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에 대해서 우리의 유일한 응답은 순명의 태도밖에 없습니다. 이 순명의 태도는 사랑에서 나온 것이며 굳건하면서도 개방적이며 참으로 창조적인 것입니다. … 순명을 한다는 것은 생각을 멈추는 것이 아니고 노예적인 태도로 회칙의 단어들을 앵무새처럼 종알거리는 것도 아닙니다.”
-페드로 아루페, “인간생명에 관한 총장 서한” (1968)-
묵상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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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는 주님의 발자취가 서린 예루살렘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평생 성지에서 머물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이냐시오와 같은 성지 신참자들이 갖고 있는 과도한 열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던 성지 관리의 책임을 맡은 수도회의 장상은 이냐시오의 뜻을 거부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이냐시오는 화를 내거나 서운해 하기 보다는 ‘주님의 뜻이 아니라’고 이해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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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뜻과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시민의 자유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의 가치체계에서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보여주셨고 이냐시오와 같은 성인들이 보이고 있는 순명의 가치에 대해서 기억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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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드로 아루페 신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순명은 노예적인 굴종이나 비판적 사고없이 주어진 것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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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명은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의 섭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우리의 겸손함의 또 다른 이름이며, 특히 오늘날처럼 자신의 생각과 주의/주장이 강조되는 세상 속에서 오히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일들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영적인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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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 생각과 감정에만 사로잡힌 것은 아닌지, 우리는 우리의 뜻과 다를 수 있는 하느님의 섭리를 겸손되이 찾고자 하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합시다.
묵상을 위한 질문
기도 속에 다음 물음을 마음에 품고 묵상합시다.
1. 나는 내 뜻과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섭리를 찾을 준비가 되어있는가? 기도 속에서 성찰해봅니다.
2. 내가 원하는 것과 하느님께서 원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는 분별력과 용기, 지혜를 하느님께 청해봅시다.